대학교 시절을 중국에서 보내어 북한사람은 흔하게 보았다. 어떤 교류가 있었다기 보다는 북한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어학연수를 한 학기 정도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보통 북한사람이 중국에 올 정도면 상류층 직업을 가지고 있는 김일성 대학의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이도 웬만큼 지긋하고 중국어도 일정부분 일상생활에서 쓸 부분은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서 북한사람와 한국사람이 따로 경계가 있지 않았지만 한국사람은 북한사람에게 혹은 북한사람은 한국사람에게 말을 걸면 안되는 암묵적인 룰이라는 게 있었다.

굳이 말을 걸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같이 해야하는 상황이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중국어로만 서로 간의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북한사람이 먼저 말 건 경우는 극히 드물고 한국사람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무시하거나 못들은 척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북한사람은 자신들끼리 북한어로 대화를 하다가도 주위에 한국인이 오면 입을 다물고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남한사람과 대화하는게 발각이 되면 당장 북한으로 소환된다고 한다.

또한 북한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결석이 용납 되지 않고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그들도 일년 중 딱 하루만 빠질 수 있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북한사람이라면 누구나 수업에 빠져야 한다. 김일성 탄생일. 그날은 중국과 북한이 맞닿아 있는 곳까지 가서 김일성 탄생일을 서로 축하하며 잔치를 벌인다고 들었을 때 나혼자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북한사람의 복장은 모두가 똑같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검정색 상의에 왼쪽 가슴에는 북한 특유의 뱃지를 달았고 하의는 아버지 정장바지 같은 큼직막한 옷을 입었다. 모두 잔디처럼 짧게 깎은 머리하며 짤막한 작은 키에 얼굴이 햇빛에 잔뜩 그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두가 북한 상류층 중에서도 선택받은 남자들이며 여자인 북한사람은 중국에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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