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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Issue

여자들은 침묵, 묵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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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침묵, 묵인 하고 있다.


여자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은 그 부당한 상황에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놓이게 되어 불합리한 일을 겪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자', '여성' 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어떤 상황에 놓였든 다른 이보다 더욱 불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면, 여성들이 처한, 처해지는 불합리하고 불합당한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1월 17일 문재인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종시 공무원 워킹맘의 과로사 사건을 이야기하며, 그에 대한 방안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에게는 근무시간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근로시간을 임금 감소 없이 단축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러자 여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육아가 엄마에게만 국한되어 있고 그로인해 같은 임금, 같은 노동강도에 놓인 '아빠' 들을 역차별하여 사회에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방안일 뿐이고 오히려 적은 노동, 같은 임금을 받는 '엄마' 를 사회적으로 고용하지 않는 형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에서 우려의 목소리들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선후보의 방안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이거 좋은데?'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여성의 불합리한 사회적 차별에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조차도 문재인 대선후보의 방안이 어떤식으로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변에다 물어보기로 했다. 대상은 아직 문재인 대선후보의 발언을 듣지, 보지 못한 사람들임과 동시에 문재인 대선후보의 발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어야했다.

처음에는 세종시 공무원 워킹맘의 과로사 사건으로 운을 띄우고 그 다음에 문재인 대선후보의 방안을 말해주자 내 주변 사람들은 문재인 대선후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우려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문재인 대선후보를 칭찬하던 목소리들이 작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아, 하는 탄성에 많은 말이 담겨져 보였다. 아직 '육아' 라는 일 자체는 엄마에게 국한되어있었다. 우리들의 인식부터가 그랬다. 이는 단순히 문재인 대선후보의 방안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끝이 나서는 안된다. 여전히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져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면접을 볼 때도 여성들은 강요당한다. 여자가 차(茶)를 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자 면접자들에게만 묻는다. 남자 면접자는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개선되어야 할 대상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를 상사에게 받쳐야 하는 여자직원들이 아니라, 그를 요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여자 면접자들에게만 한다면 면접관들은 도대체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해 이런 질문을 여자 면접자들에게만 던지는 것인가?

한 예로 내가 겪었던 면접관이 했던 말을 들려주자면 다음과 같다. 면접관은 나를 포함한 3명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를 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고객은 대부분 부유한 고위 관리직 남성이고 여자가 차를 타주길 원합니다. 이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 자체가 불합리함을 야기시키는 차별 발언이자 여성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싫으면 면접을 포기해라 처럼 충분히 들리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2016년 기준 12.5%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때에 구직자들은 면접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현시대에 놓인 면접자들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여전히 타협과 감수를 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면접관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나서야 그 남자 면접관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아직은 여자가 차를 타야 더 좋긴 하죠." 면접을 보고 나와 다른 면접 질문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이 문장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지. 아직은 여자가 차를 타야 더 좋긴 하죠."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 우리는 대답만 하면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 스스로를 잠깐 속이고 정해져 있는 대답만 하면 된다. 쉽다. 쉬운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이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발표가 날 때까지 붙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붙으면 다니기는 할테지만 내 생각에 반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까지 붙은 회사를 스스로가 떳떳이 다닐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오히려 불합격 소식을 듣고 안도하는 나를 보고 뜻모를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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