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이음,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



대학로에 친구를 만나려고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가고자 했다. 간만에 한국으로 나와 책을 보기 위함이었다. 날은 너무 추웠고 내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추위를 피해 한적한 카페로 들어가 대학로 주변 책방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중고서점 알라딘과 책방 이음. 나는 블로그로 책방 이음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연극을 보러가기 전까지 시간 떼울곳이 필요해서였다. 카페에 오래 앉아있기도 싫었다. 춥지만 어딘가 나가 돌아다니고 싶었다. 멀리 광화문을 포기하고 선택한 책방 이음.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내내도 나는 걸음을 멈칫멈칫하였다. 계단 곳곳에도 읽을거리가 많았다. 딸랑. 소리를 내고 들어간 책방 이음은 조용했다.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 두분이 전부였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으면 어쩌지 하고 들어온 곳에 적막하니 혼자 남자 그 또한 당혹스러웠다.


나는 문옆 작은 서랍 처음서부터 주인장의 서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는 팔지 않는 책이니 보고 제자리에 가져다달라는 문구도 있었다. 곳곳에 여러가지 포스터가 붙어 있어 참석해달라는 문구도 있었다. 작은 서랍서부터 서고를 뒤지면서 여기 책방 주인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방은 수입을 남기지 않는다. 라는 문구에서는 또 다시 멈칫했다. 지하 1층을 내려오면서 작은 보물이라도 발견할까 멈칫멈칫 내려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마음의 멈칫이었다. 그 작은 서고를 둘러보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 결국 한참을 살펴보고 고른 책은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초판본이었다. 예전에는 만해 한용운이나 해환 윤동주와 같은 부드러운 어감의 시인들에게 더 마음이 갔는데 요즘들어 기형도와 같은 삶의 피폐함을 이야기하는 시인들에게도 마음이 가기 시작해서였다.





책방 한쪽에는 작은 전시 공간과 함께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생소한 수국차를 주문하고 책을 계산하고나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은 테이블 위에 신경쓴 소소함이 담겨 있는 먹을거리가 있었다. 차가 온전히 우려질 때까지 전시를 구경하고 연극을 보기전까지 시간 떼울 공간으로 책방 이음을 선택하기로 했다.


기형도의 시들을 읽으면서 행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한 문장이 한 행에 끝나는게 아니라 몇번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나름대로 찾으면서 시 하나를 읽고 또 읽어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기형도 시인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써내려간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


- 오래된 書籍(서적), 기형도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등 한 문장으로 끝날 말들을 행을 나눠 적어놓았다.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까지 하고 문장을 완전히 생각했더라도 표현을 고민한 흔적처럼 보인다. 나의 경력은... 하고 또 표현을 고른 흔적처럼 숨쉴 공간을 만들어 시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면 꼭 읽는 독자가 시인 기형도가 되어 시를 써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형도 시인은 표현또한 달랐다.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경력은 출생뿐이며, 두려움이 속성이고, 미래는 과거다. 현재 상황에 대한 무기력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


- 오후 4시의 희망, 기형도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행을 달리 했고 숨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침묵은 두렵지만 믿음직한 수표다.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은 (나보다 먼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표현법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기형도 시인이 행을 달리 한 것을 시의 문장을 어떤 표현을 써내려가야하는지 고심한 흔적으로 보았다.





어느덧 예매한 연극 시간이 다가오고 적막한 작은 책방에도 손님들이 찾아왔다. 2주에 한 번 하는 스터디. 빵과 감잎차를 얻어 마시며 시집을 마무리 지었다. 여기에 머물렀던 시간이 좋아 책 말고도 뭔가 품고 나갈게 필요했다. 눈여겨 본 전시 그림들의 엽서라도 사고 싶었지만 따로 준비되어 있지는 않았다. 다음에 다시 한번 오겠다는 마음 말고는 품고 나갈게 없었다. 이음에서는 대형 서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잘 볼 수 없었던 책들이 많아서 볼거리가 더 있어서 좋았다. 마음을 품는거 말고도 다음에 꼭 다시 한번 들러야겠다.


'...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 《입 속의 검은 잎》은 1989년 5월 30일,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 발행한 시인 기형도의 유고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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