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3.1 혁명에서 8.15 광복에 이르기까지'를 주제로 열린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출정식'에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를 든 참가자들이 서대문형무소를 향해 행진을 펼치고 있다.



역사 속에 묻혀버린 여성 독립운동가들



영화 암살을 보고나서 문득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얼마나 있으며, 어떤 일을 하였는지, 왜 우리 주변에는 남성 독립운동가들만 존재하는지 궁금한 이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호기심에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여남노소 불문하고 이루어졌는데 우리가 이름을 댈만한 이들은 대부분 남성 독립운동가들뿐이다. 우리 머릿속에 가장 먼저 맴도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단 한 명. 유관순 열사. 그래서 여성 독립운동가는 어떤 분들이 있었고, 어떤 일들을 하였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들을 대신해 집안을 단속하고 군자금을 모으며 직.간접적으로 항쟁을 펼쳐나갔다.



유관순, 심명철,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3.1 운동 대표 7인. 3.1 운동 후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에 수감되었다.


조금옥, 주보배, 신경애, 소사숙, 성혜자 3.1 운동 후 수감되었다.


정정화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밀사 역할을 했다.


남자현 3·1운동 때 중국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하며 12곳에 교회를 세우고 10개의 여성교육회를 조직해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에 힘썼다. 1927년 4월 사이토 총독 암살을 계획했으나 실패하였다. 1933년 만주국 주재 일본 전권대사를 살해하려 폭탄과 무기를 휴대하고 가다가 체포당하고 6개월간 고문에 시달리고 단식투쟁 끝에 순국하였다.


오광심 만주에서 활동하며 1931년 조선혁명당에 가입했고, 1940년 이후에는 광복군에 입대해 선전활동 등을 담당하며 애국부인회를 조직했다.


김향화 기생들을 모아 3.1운동 당시 수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효정 여성 노동자들을 설득해 항일투쟁을 펼쳤다. 13개월간 옥고를 치루었다.


허은 서로군정서 대원들의 군복을 만들어 배급하고 군정서 회의 때 식사를 조달했다. 저서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를 통해 독립군들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다.


전월순 1939년 9월 16세의 나이로 구이린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에 입대했다. 일본군에 대한 정보 수집과 대원 초모 활동을 펼치었다.


박순부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의 부인으로 일송이 떠나자 남은 식구를 책임지고 피해다녀야 했다.


이해동 박순부의 며느리이다. 남성들이 떠난 뒤 집안의 남은 가족들을 위해 생활난을 해결해야 했다. 끝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이희경 1918년 10만불 자금을 만들어 4살 된 딸과 입국하였으나 미화 소지를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 투옥되었다. 1919년 3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창립된 하와이 부인단체의 통일기관인 대한부인구제회 가입하여 매주 한식을 만들어 팔아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28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김보배·박금우·곽명숙·박정숙·이양순 등과 함께 영남부인회를 결성하였다. 독립운동의 후원, 재미한인사회의 구제사업을 계속해나갔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각종 독립의연금과 전쟁후원금, 군사금 등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윤희순 1895년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밥을 지어주고, 빨래를 해주는 등 의병의 뒷바라지와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김마리아 1919년 2.8 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그 해 4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후원 활동을 벌였다. 임정에 군자금 모집, 전달을 했다.


박차정 1929년 민족주의 여성단체 근우회에서 활동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차별 일제 철폐,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인신매매, 공창의 폐지 등 당시로는 혁신적 주장을 내세우며 여권신장에 힘썼다. 1930년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 했으며, 중국 내 독립운동세력을 모아 조선민족전선연맹을 만드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박자혜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부상 당한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 후 3개월간 이어진 만세운동에서 간호사들과 함께 간우회를 조직해 적극 참여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으로 신채호 선생이 중국 현지에서 일본 경찰에 잡혀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자 후원금을 모집해 옥바라지에 힘쓰기도 했다.


이는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조마리아·​권기옥·김보배·박금우·곽명숙·박정숙·이양순 등이 그렇고, 국가보훈처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체 독립유공자 1만 3744명 중 여성 참여자로 등록된 대상자는 1931명뿐이다. 여남노소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이 전개됐다는 역사적 사료에 비해 이는 틀림없이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못해도 여성 또한 남성과 비등한 숫자로 등록되어 있어야 옳다.  하지만 1931명이라는 미비한 숫자 가운데에서도 단 248명만이 독립활동을 인정받았고, 이는 전체의 1.8%에 그친 수치이다. 자료 미비나 기준 미달, 행적 미상 등으로 다수가 선정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아직도 역사 속에 묻혀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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