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포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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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화면은 영화 동주를 생각나게 한다. 17, 18살 독립 운동가는 자유롭고자 일본에 항변했다. 자유의 의미를 묻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는 것. 그것 밖에는 없다. 친일도 자유라고 말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다. 일본놈들이 하라면 해야하는 것들만 하니 그건 자유가 아니라, 종놈이다. 유관순 열사를 숨지게 한 친일파 정춘영이 그 종놈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 감독 조민호는 유관순 열사의 피를 빨간색으로 보고싶지 않았다고 한다. 동주처럼 전체가 흑백 영화였던 것과는 다르게 영화 항거는 간혹 컬러 화면이 등장하곤 한다.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 수감되기 전의 생활상을 비춰 줄 때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모습, 태극기를 몰래 들고 다니는 모습,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를 때의 모습 등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만의 선명한 색깔을 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그럼 누가 합니까?"



영화는 독립 운동가의 수감 후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고문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기보다 주권을 빼앗긴 국민이 얼마나 더 처참해질 수 있고, 일본이 우리에게 얼마나 심한 악행을 자행했는지 그리며, 아직도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려준다.


유관순 열사는 석방되기 이틀전인 192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유관순 열사를 그린 영화는 1974년 [유관순]을 끝으로 45년만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논에 안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마라



정춘영 후손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권애라 지사의 손자 김정일씨는 살아생전 할머니가 감옥에서의 유관순 열사를 이렇게 회고했다고 전했다.


“어느 날 고문 당하고 감옥으로 돌아오면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서 여자로서 걷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올 정도였어”


“당시에는 할머니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성고문이었다는 취지였던 것이었다”라며 이어 “유관순 열사가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독립운동을 유독 더 많이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집중적으로 고문을 당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보기보다 순한 성격이었다”


심명철 지사의 장남 문수일씨 또한 어머니가 “유관순은 말이 별로 없었다”라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덧붙이면서 “어머니도 감옥에서 고문을 당해서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왔다”라고 회고했다.


심명철 지사는 여섯 살에 약을 잘못 복용해 시력을 잃었는데 개성경찰서의 한국인 형사 황달평에게 체포됐는데 형사가 “앞 못 보는 장님 주제에 무얼 안다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느냐?”고 하자 “눈이 멀었다고 마음조차 멀었겠느냐?”라고 항변했다.


임명애 지사는 수감됐다가 출산이 임박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출산 한 달 만에 신생아와 함께 감방으로 돌아왔다. 남편도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항거에 나오는 임산부 역할이 아마 임명애 지사를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싶다. 비록 달랐겠지만 한 분 한 분 찾고 싶었다.



1919년 학생 약 70명이 독립 선언서를 하면서 이들은 “만일 배신자가 나오면 살아남은 자가 그 배신자를 죽인다”고 맹약했다.



독립 선언서


1.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에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에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2.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독립 선언서 전문 바로가기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에서 독립 운동가들은 민요를 개사해 노래를 불렀지만 현재는 두 곡 모두 가락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심명철 지사의 장남 문수일씨가 적었다.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아래는 배우 고아성이 열일곱 유관순 열사에게 전하는 편지 전문이다.





배우 고아성이 열일곱 유관순에게


3.1 운동 100년이 지나 열사님 영화가 나오게 되었어요.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

저는 매일같이 기도하듯 연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열사님의 음성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은 셀 수 없이 봤지만 서두요.

대사를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늘

가슴 한켠이 뜨겁고 죄스러웠습니다.


작년 가을, 서대문 형무소에는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분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영화를 바치고 싶습니다.


배우 고아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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